K씨 시리즈 #6: 결정문이 온 날

[지난 편-K씨 시리즈 #5: 조사실의 90분]에서 K씨는 조사실을 나왔다. 그리고 43일간 결정문을 기다렸다.

문자 한 통이 왔다. 수사 결과 통지불송치 결정.

K씨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91일 전, 오후 2시 41분에 울린 전화를 생각했다. 불송치 결정의 의미를 알면 이 91일이 어떤 구조였는지 보인다.

불송치 결정의 의미는?

불송치(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는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종결된다는 뜻이다.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무죄 선고와는 다르다. 무죄는 재판에서 법원이 내리는 판단이다. 불송치는 재판으로 가기 전 경찰이 “재판에 넘길(기소할)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검찰에 넘기지 않는 결정이다. 법원이 아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불송치로 사건이 완전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고소인은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이 접수되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어 검사의 판단을 다시 받게 된다. K씨가 받은 결정문에는 이 절차에 대한 고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K씨의 결정문에 적힌 불송치 이유는 한 줄이었다.

“계좌를 제공한 사실은 인정되나,
공모 의사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K씨가 [시리즈#1]의 첫 전화부터 [시리즈#5] 조서 수정까지 91일 동안 일관되게 유지한 명제다. 결정문은 그 명제가 입증됐다는 기록이었다.

이강민이 본 91일

이강민이 K씨의 91일을 정리하면 다섯 개의 결정으로 좁혀진다.

1. 첫 전화에서 말하지 않았다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보 없이 말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2. 출석 전에 고소장을 먼저 확보했다

정보공개청구로. 수사관이 보고 있는 것을 K씨도 보게 되는 데 10일이 걸렸다.

3. 고소장을 읽기 전 내 타임라인을 먼저 종이에 적었다

상대방의 논리가 내 기억에 끼어들기 전에 내 사실을 고정했다.

4. 수사관의 질문을 미리 예측했다

고소장의 공백 두 곳이 질문이 됐고,
K씨는 그 질문을 이미 알고 조사실에 들어갔다.

5. 조서를 서명하기 전 세 곳을 고쳤다

“들은 적이 있다”가 “알고 있었다”로 바뀐 자리에 줄을 그었다.

다섯 결정 중 어느 하나도 변호인이 필요한 행동이 아니었다.

공통점이 있다. 각 단계에서 K씨는 상대방이 먼저 확보한 정보를 뒤쫓아 확보했고, 수사관이 정리하는 언어 대신 자신의 언어로 사실을 고정했다. 수사관과의 정보 격차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 격차를 줄이는 것이 K씨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계좌에 돈이 지나간 것과 공모한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강민은 K씨가 이긴 방식에서 한 가지를 봤다.

K씨가 이긴 것은 법을 잘 알아서가 아니었다. 절차의 어느 시점에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요구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수사관이 입증해야 할 것은 공모 의사였다. 계좌에 돈이 지나간 사실은 처음부터 있었다. K씨가 부정할 이유가 없었다. K씨가 지켜야 할 선은 하나였다. 그 돈이 지나간 것이 공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K씨는 그 한 가지를 다섯 단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록에 남겼다.

여기까지가 K씨가 변호인 동행 없이 도달한 구간이다. 만약 고소인이 이의신청해 재수사가 개시되거나 기소 이후 재판 단계로 진입했다면 변호인 선임이 사실상 필수다. 그러나 K씨의 사건은 경찰 단계에서 종결됐고, 통계적으로도 불송치로 끝나는 사건이 가장 많다.

K씨는 91일 만에 일상으로 돌아갔다. 계좌가 지나갔다는 것만으로는 공범이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조서에 남기는 과정이 결과를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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