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는 30분쯤 매끄럽게 흘러갔다.
J씨가 2주 동안 정리해 둔 타임라인 덕에,
돈의 흐름을 묻는 질문엔 막힘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사관의 질문이 미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J씨도 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어느 정도는 아셨던 거 아닙니까?”
사건을 ‘아는 사람’에게 묻던 질문이,
책임을 ‘진 사람’에게 묻는 질문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나, 이강민은
이 순간을 “신분 전환의 전조“라고 부른다.
참고인으로 불려 왔는데,
조사 도중 질문의 무게중심이
나에게로 옮겨오는 그 지점이다.
이걸 못 읽으면,
참고인인 줄 알고 술술 답한 말들이
나중에 나를 겨눈다.
참고인 피의자 신분 전환의 전조는
— ‘질문의 방향’에서 온다
참고인 조사는
원래 ‘남의 사건’을 확인하는 자리다.
그런데 질문이
“당신은 무엇을 했나”,
“당신도 알았던 것 아닌가”,
“당신은 왜 그렇게 했나”로 옮겨가면,
수사기관의 관심이 사건에서 나에게로 이동한 것이다.
질문의 주어가 제3자에서 ‘나’로 바뀌는 순간 — 그게 전조다.
J씨가 [출석 전 2주]에 자기 타임라인을 장악해 둔 덕에,
역설적으로 이 미묘한 방향 전환을 알아챌 여유가 있었다.
형식이 참고인이어도, 실질이 피의자면 권리가 달라진다
여기서 핵심 법리가 작동한다.
수사기관이
어떤 사람의 범죄혐의를 인정하고
수사를 개시한 “실질“이라면,
부르는 형식이 ‘참고인’이라도
그 사람은 실질적으로 피의자다.
그리고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는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한다(형사소송법 제244조의3).
대법원도, 검사가 사전조사로 혐의 정황을 포착한 뒤
참고인으로 소환해 진술거부권 고지 없이 받은 진술조서는
실질이 피의자신문조서와 같아 위법수집증거이고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대법원 2010도8294).
뒤집으면 이렇다.
J씨가 전조 이후에도
참고인인 줄 알고 계속 답한 진술은,
만약 그때 실질이 피의자였는데 고지가 없었다면,
거꾸로 J씨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참고인과 피의자의 권리가 어떻게 갈리는지는
[참고인과 피의자 차이]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다만, 전조가 보인다고 다 ‘실질적 피의자’는 아니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
단지 공범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곧장 피의자 지위가 되는 건 아니다.
대법원은 같은 날 다른 사건에서,
공범 가능성만으로는 참고인이 피의자 지위에 있게 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대법원 2011도8125)
기준은 ‘수사기관이 내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를 개시했는가‘다.
그래서 전조를 읽는 것과,
내가 실제로 어느 지위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 느낌만으로 단정하지 말고, 확인해야 한다.
전조를 읽었다면, 그 자리에서 할 일
J씨가 그 순간 한 일은 세 가지였다.
하나, 지위를 확인했다
— “저는 참고인으로 알고 왔는데, 지금은 제 혐의에 관해 묻는 겁니까?”
둘, 진술거부권을 의식했다
— 실질이 피의자로 기울면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의식했다면,
조서를 확인·정정하는 단계도 같은 방어선이다 — [피의자 조서 서명 거부] 참조.”
셋, 변호인의 조력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끌려가며 계속 답하지 않는 것, 그게 첫 방어다.
그리고 J씨는 한 가지를 더 했다.
전조를 느낀 그 순간부터,
자기 기록을 먼저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룬다.
J씨의 조사는 그 한 문장
(“그런데 당신도…”)에서 갈렸다.
전조를 읽은 J씨는 그 자리에서 멈췄고,
빈손으로 끌려가지 않았다.
신분이 흔들리는 순간을 알아챈다는 것
— 그게 참고인으로 끝낼 수 있느냐를 가르는 첫 분기였다.
본 글은 [2026-06] 기준 법령·공식자료·실무상 관찰을 바탕으로 작성한 비변호사의 관찰·분석 기록입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 대응은 반드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거치시기 바랍니다.